‘진실’을 선택한 남자 이야기’

외면하고 싶은 진실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치부를 당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갈등 없이 진실을 택하는 이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면 올해 초 개봉한 영화 <플라이트>는 흥행에는 성공했을 지 몰라도 여운은 없는, 그저 그런 영웅담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때 모험 영화들을 연출했던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진실과 용기에 초점을 맞췄고, ‘영웅’ 역할에 익숙했던 배우 덴젤 워싱턴은 천재 비행기 조종사이자 알코올 중독자인 휘태커 역을 멋지게 소화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일생일대의 기회, 그 뒤에 숨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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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행실력을 갖춘 민항기 조종사 휘태커(덴젤 워싱턴)는 애인과 불타는 밤을 보낸 후 숙취상태로 잠에서 깨어난다. 폭풍우가 몰아쳐 불안한 기상상태에서 만용인지 자신감인지 모를 탁월한 실력으로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이륙시킨 후 승객들에게 박수를 받지만, 휘태커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조종석에서 술을 마신 후 다시 잠에 빠져든다. 그러나 10여분 후…. 강한 난기류에 더해 기체 결함까지 발견되고 비행기가 점차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극한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모두가 불안해 하는 가운데 잠에서 깬 휘태커는 연속으로 기체를 뒤집는 배면비행을 펼치며 100% 사망 위기에서 95% 승객의 목숨을 살려낸다.

이후 휘태커가 병원에서 잠들어 있는 사이, 이 극적인 이야기는 순식간에 곳곳으로 퍼지고, 퍼진 이야기는 또 다시 확대 재생산 되며 휘태커를 일약 영웅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하지만 TV와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자신의 얼굴이 드러날수록, 휘태커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음주상태로 비행기를 조종한 것이 발각될 경우,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중의 반응이었다.

그들이 기대했던 ‘영웅’이 실은 알코올 중독자이자 마약 복용자라는 사실을 밝혀진다면, 대중은 가차없이 잔인한 돌팔매질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휘태커는 세상의 시선을 피해 도망을 다니지만, 이 모습마저 대중들은 ‘영웅의 겸손함’으로 받아들이고 덕분에 기자들은 더욱 끈질기게 그를 따라붙는다.

‘영웅’이 되기를 포기한 남자, 고쳐 살 수 있는 기회를 잡다

명성을 크게 얻을수록 추락 또한 처참하리라는 사실을 직감한 휘태커는 결국 어린 시절 살았던 농장으로 숨어든다. 그의 도피가 희망적이었던 이유는 조종간을 잡고도 놓지 못했던 술을 멀리하려는 노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쟁쟁한 비행기술을 자랑하는 다른 조종사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전원 사망’이라는 실험결과가 나와 천재적인 능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으며 휘태커는 ‘고쳐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다면 애초에 휘태커 같은 이가 왜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겠는가.

사고기에서 발견된 빈 술병, 음주 비행임을 의심할 만한 혈중 알코올 농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무혐의’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그 자신까지 속일 수 없었던 휘태커.

흔히 알코올 중독자가 금주 선언을 한 후 알코올에 패배하는 이유가 망각과 해방감이듯, 휘태커 역시 이 복잡한 현실을 잊기 위해 청문회 전날 다시 술을 찾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청문회에 참석한 그는 ‘거짓된 영웅’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다. 비록 벼랑 끝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청문회를 통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하나의 진실을 스스로 폭로함으로써 고결한 영혼을 회복하고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관계까지 파괴하는 ‘알코올 중독’

중독의 폐해중독자의 거짓말알코올 중독 치료법
알코올 중독은 몸이 망가지는데도 술을 계속해서 많이 마시는 병이다.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척이나 다양하여 하늘의 별 만큼 많다. 이유라기보다는 핑계에 가깝기 때문에 그토록 다양하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몸을 망가트린다.
잘 알려진 바대로 간에 대한 해악은 말할 것도 없고 중추신경을 피폐화 한다. 알코올성 치매는 그 어떤 치매 보다도 빠르게 진행하여 뇌의 모든 기능을 다 망가뜨려 버린다. 환자의 상태는 끔직하리만치 황폐화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만성질환전문 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이 더 무서운 이유는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알코올에 중독되면 술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 되며 인간관계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가 된다. 또한 거의 모든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신뢰의 문제에 직면한다. 술을 마시기 위해 사람들의 걱정 어린 충고를 부정하고 술을 쫓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시작한다. ‘매일 마시는 것은 아니다’, ‘그냥 소주 한잔 했을 뿐이다’, ‘다음날 멀쩡했고 일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등. 비난에 강하게 반항하며 문제를 축소하거나 숨기고, 부인하기 시작하며 이 모든 사실을 망각하기 위해 다시 알코올에 의존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크게 중재(Intervention), 해독(detoxification), 그리고 재활(rehabilitation)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중재는 회피하려는 마음을 해결하고 질병을 치료하지 않을 시 발생되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인지하게 하는 과정이다. 해독은 금주로 인한 금단현상을 완화시키고 심신을 회복시키는 단계이며, 재활은 금주에 대한 동기를 증가시키고 알코올이 없는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며 재발을 방지하는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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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준호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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