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있는 자체만으로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들이 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대자연이 그러하고, 순리에 따라 성실하게 삶을 살아낸 앞선 사람들이 그러하며, 능력과 관용과 지혜를 두루 갖춘 아름다운 노년이 그러하다. 흰 머리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는 지금의 사회에서, 그러나 그 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아름다운 황혼이 있다. 여전히 젊은 날의 긴장감으로 허리가 꼿꼿한 곽진영 명예교수(7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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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영 명예교수(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전 한양대학교병원장)

움직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감사하며

“나는 도전 정신이 무척 강한 사람이에요. 가방 하나만 달랑 챙겨 세계 어디로 떠난다 해도 두려움이 없어요. 30여 년 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으로 신장이식수술에 관한 공부를 하러 떠날 때도 나 혼자였어요.”

무엇을 하든 주변인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곽진영 교수는 대부분의 일처리를 혼자 하는 편이다. 공부도 그랬고, 가족들과 동반할 수 있는 기회도 그랬으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가능한 과정보다 결과로 얘기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그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잘 모르지요.” 과정에서의 힘겨움과 고단함은 적당한 긴장과 실패가 없는 결과들을 안겨 주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래서 감사하다. 노력한 만큼, 고생한 만큼, 긴장한 만큼 그 끝이 좋았기 때문이다. 어떤 욕심이 있어 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해서 능률의 효율을 꾀한 것이므로 후회도 없다.

한양대학교병원과 더불어 해 온 32년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잖아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얘기하자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란다고. 한양대학교병원과 함께 해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나도 그런 생각이 듭디다.”

1972년 7월은 곽진영 교수가 한양대학교병원 전임강사로 부임한 날이다. 당시 의학의 미개척 분야였던 이식학과 혈관학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스스로 답답한 순간들이 많았다. 앞선 지식과 사례가 전무후무했기 때문이다. 홀로 해외 연수를 떠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귀국 후 ‘뇌사’와 ‘심장사’를 구분 못하던 1979년 당시 한양대학교병원에 이식팀을 만들어 국내 최초로 뇌사자 신장이식수술을 시행하고, 20년을 싸워 2000년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1991년부터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협조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장교환이식’의 기록을 남겼고, 빈곤층의 장기를 밀거래하는 부도덕한 행위와도 엄격하게 맞섰다. 이후 곽진영 교수는 한양대학교병원과 함께 하며 의학계에서 굵직한 성과들을 계속해서 이뤄 왔다.

“한양대학교병원은 눈길 가는 곳마다 내 추억이 깃들어 있어요.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개원 당시 한양대학교병원은 국내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재벌 병원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열악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당시 원장을 맡게 된 곽진영 교수의 머릿속은 한 순간도 쉬지를 못했다. 뒤처진 모든 시설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계획하여 서관을 건립하고, 외래에 휴식 공간과 에스컬레이트가 설치되었고, 병원과 의과대학 건물 사이에 학내 최초로 구름다리가 생겼다. 또한, 동문과 이웃 개원의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뉴스레터도 만들어 배포하였다.

아름다운 노년

image일흔의 나이는 굴곡진 역사를 살아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나이에 이르면 대부분 지나간 날에만 마음 주며 살아가지만, 곽진영 교수는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시키며 여전히 평생 해 온 일들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스스로 자꾸만 눕고 싶어지는 나이라고 하면서도 생각과 행동은 늘 살아있다. 아직 청년의 느낌이 남아있는 꼿꼿한 허리가 그것을 말해 준다.

“내 종교가 가톨릭이에요. 은퇴 후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요.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허허허.”

은퇴 후 계획서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좋은 일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좋은 일일수록 말을 아껴야 하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곽진영 교수이다. 온화한 성품과 타인에 대한 배려로 평생 적을 두지 않은 탓에 두루두루 평안한 이 노년의 이즈음이 아름다운 이유다.

도전 정신이 강했던 곽진영 교수는 30년 전 홀로 먼 타국으로 신장이식수술에 관한 공부를 위해 떠났다. 그리고 끊임없는 그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신장이식에 대한 인식과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글/손미경 자유기고가 사진/안호성

[인생예찬] 한양대학교의료원의 임직원이 만들어가는 ‘의미’있고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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