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조재림 진료명예교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지금, 내게 주어진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과 마주하면 좌절하기 마련이다.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다시 무언가로 태어나고 싶지도,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않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인생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을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한양대학교병원 조재림(66) 진료명예교수의 인생 2막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image

인생 1막, 길이 열리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가만히 되밟아보면 정해진 대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길이 그렇게 열려 있었던 것이에요.”

다섯 살 때인가, 여섯 살 때인가. 6.25동란 피난 중 그림에서만 보았던 개구리를 잡아 요리조리 살피던 남자 아이는 작은 곤충의 움직임에도 큰 관심을 갖곤 했다. 그래서 수의대나 농대를 진학할 마음을 품었으나 길은 이미 정형외과 전문의로 열려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본분에 충실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젊은 시절, 단 한 순간도 학업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결과는 곧 길이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니 길이 그렇게 열려 있었다는 말은 곧 스스로 길을 열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1960년대 말 연세대학교 의학대학을 졸업한 뒤 육군 군의관을 거쳐 한양대학교병원과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세월의 두께가 점점 더해 갈수록 드는 묘한 깨달음이다.

인생 2막, 고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후회 없이 물러나는 자리에서 간단한 인생 이력과 그간 의료현장에서 귀하게 얻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할 때, 앞으로 편히 쉬겠다는 생각 대신 더욱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었다. 정년퇴직과 동시에 다시 정형외과 전문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은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 후배들에게 너무도 고마웠어요. 그러니 당연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작심이 설 수 밖에요.”

무사히 인생 1막을 마무리 질 수 있었던 것도 고마운 일인데, 또 한 번 일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고마움이야말로 어찌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시절보다 더욱 즐겁게 일을 하는 데는 바로 그 고마움이 단단한 뒷심으로 작용한다. 병원장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다시 자리바꿈을 한 것을 빼고는 달라지지 않은 삶. 그래서 더욱 고마운 인생 2막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는 중이다.

인생 3막, 새로운 꿈을 꾸다

image“만약 내게 또 한 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것이 내 길이면 자연스럽게 열리지 않을까요.”

‘2000년 동아일보가 선정한 척추 베스트 닥터’로 선정되기도 한 노년의 실력 있는 의사가 새롭게 꾸는 꿈 역시 같은 선상 위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꼭 가야 할 길이면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리라 믿는다. 언제쯤이 될지, 어디여야 하는지 굳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먼저 손짓을 해 줄 것이므로. “나는 아직도 ‘선생님 덕분에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로 들립니다. 또 그처럼 기분 좋은 일도 없어요. 8시간의 수술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어떤 힘든 수술도 거부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렵고 긴 수술을 거듭 할 수 있게 한 힘의 소리. 가능하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싶은 것 또한 인생 3막에서 꾸는 꿈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걷고자 하는 많은 후배들이 단 하나라도 무언가를 배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가 배우는 학생일 때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한창 바쁘던 시절의 정형외과 전문의일 때는 어떠한 어려운 수술도 다 감수하고, 강단에 섰을 때는 생각의 차이가 큰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모든 분들과 후배들에게 더욱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글/손미경 자유기고가 사진/김선재

[인생예찬] 한양대학교의료원의 임직원이 만들어가는 ‘의미’있고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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