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성형외과 임직원들은 매년 야외 자원봉사 활동으로 ‘아름다운 동반, 산행’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산행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가 야외로 나간다고 하니 무척이나 설레었습니다. 게다가 아침부터 시원한 가을 날씨는 기분을 한껏 들뜨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산행’이 제게는 많이 낯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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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과 함께 산행을 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산행을 한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봉사활동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하거나 대학교 때 단체로 꽃동네를 다녀왔던 경험이 전부였던 제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남이섬에 도착한 후 ‘36번 동행’이라고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아름다운’이라고 쓰인 명찰을 파트너에게 걸어드렸습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를 볼 수 없는 분과 산행을 한다는 것이 아직도 어렵고 망설여지던 끝에 용기를 냈습니다.

아버님 세대로 보이는 짙은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께 명찰을 걸어드렸습니다. 다행히 제게 반갑게 인사하고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몸 여기저기를 살피시며 촉각과 청각 그리고 마음의 눈으로 저를 알아가고 계신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낯설고 불편하게 시각장애인 분과 만남을 가진 저와 달리 아름다운 동행 산악회에 자주 참석하셨던 다른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능숙하고 편해 보였습니다.

모든 파트너가 정해지고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배 타는 곳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동행하시는 분이 “왜 안가고 서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눈이 보이는 제게는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눈이 보이지 않는 분에게는 하나하나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이섬에 도착하고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단풍이 든 가로수 사이로 붉고 노란 햇볕을 맞으며 가로수 길을 걸으니 그간 병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동행하신 분도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청각과 후각으로 가을 길을 느끼면서 걸으니 상쾌하다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곧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와 동행하신 분에게 점심식사야말로 너무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식의 위치도 모르니 식사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음식 위치를 알려드리고 밥 위에 반찬을 놓아드리니 앞이 안 보이신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깔끔하게 식사를 마치셨습니다.

식사 후에 동행 분은 저의 손과 어깨를 주물러 보시고는 근육이 많이 뭉쳐있다며 안마를 하며 피로를 풀어주셨습니다. 제가 받아본 안마 중 그 어느 것보다 시원했습니다.

식사 후에 동행 분은 유난히 가방을 매기 힘들어하셨습니다. 제가 가방을 들어보니 정말 무거웠습니다. 무엇을 이렇게 많이 가져 오셨나 했더니 간식거리를 묵직하게 가져오셨습니다. 어렸을 때 밤잠을 설쳐가며 기다렸던 소풍을 준비하듯 아름다운 동행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순간 아름다운 동행을 어렵고 부담스럽게만 느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오후 산책길은 더 험했습니다. 발을 헛디디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일반인도 쉽지 않은 좁은 외길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저도 눈을 감고 걸어보니 말할 수 없이 무섭고 눈을 뜨고 걸을 때보다 다리에 훨씬 힘이 많이 들어가 산행이 더욱 힘들었습니다.

힘든 외길을 함께 지나고 나니 마음이 좀 더 가까워진 듯 느껴져서 처음엔 묻지 못했던 질문을 용기 내어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동행하신 분은 스무살 때 산에서 추락하는 사고 때문에 시각을 잃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인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동행 분의 말씀을 듣고 나니 시각장애인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가깝게 느껴졌고 제가 눈이 보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이런 분들에게 베풀며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동행 분이 옆에 있는 무슨 건물이 있는지를 물어왔습니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분이 어떻게 건물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물으니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감각이 발달해서 옆에 뭔가가 나타나면 규모와 형태가 짐작이 간다고 하셨습니다.

산행을 마칠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습니다. 밤새 일한 후라 피곤에 지친 상태로 도착해서 처음엔 막막하고 피하고 싶었지만 동행을 마치려니 아쉬운 마음과 함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저는 바쁘다고 생각하고 봉사를 할 시간이 없다고만 생각하고 봉사는 귀찮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비록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뿌듯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습니다.

남에게 베풀수록 내 자신에게도 되돌아온다는 말이 새삼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주기적으로 ‘아름다운 동행, 산행’에 참석하는 참석자 분들이 위대해 보이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번 산행은 앞으로 편찮은 분들에게 의술을 펼치는 직업을 가진 저에게는 정말 큰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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