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고민하지 않는 것은 천성이지만,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습관은 부단한 노력 끝에 만들어졌다. 바쁜 일상 틈틈이 어떻게든 인생을 즐길 ‘짬’을 만들어내는 그다.

건강한 심신을 가진 의사로서 당당하게 환자의 건강을 돌보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환자의 쾌유를 도와 일상에 빨리 복귀하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기억이란 물질을 통해서만 덧댈 수 있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저 혼자서는 곱씹어지지가 않고, 이렇게 낡고 변색된 종이쪼가리라도 있어야 뭉클하던 첫 다짐이 떠오르고 어느 해 여름 긴 논쟁을 마치고 상기된 얼굴로 전공의와 함께 걸어가던 노을 진 퇴근길이 생각날 따름이다.

메모지를 찾아 나선 분주한 손이 주머니 제일 깊숙한 곳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지폐에 닿을 때면 꼭 눈앞에 어떤 버튼이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버튼을 누르면 행적이 묘연했던 추억들이 펼쳐진다.

“우리 지역에는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이 계시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먹고살 걱정 없는 환자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쓰이는 게 사실이고요.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몸까지 다쳐 근심이 많으셨던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오셨어요. 정성을 다해 치료한 끝에 다행히 상태가 많이 호전되셨지요.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려다 말고, 갑자기 할아버지가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어 제 손에 꼭 쥐여주시더라고요. ‘큰일 하는 사람이 배곯으면 쓰나!’라시며, 밥 때 됐는데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가며 돌봐줘서 고맙다고, 시간 나면 꼭 식당 가서 든든한 밥 사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치는 박기철 교수의 주머니에 기어코 쌈짓돈을 찔러넣고는 광속으로 사라진 할아버지의 진심 앞에 그만 말문이 막혔노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주신 2만 원은 아직도 쓰지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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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골절 분야 ‘미다스의 손’

야구선수가 꿈이었다. 어려서부터 훤칠한 키에 한 덩치 하는 까닭에 교내 야구부에서도 탐을 냈고, 망설일 것도 없이 야구부원이 된 적도 있다.

“꿈을 접고 나서도 한동안 미련이 많이 남았었는데, 저보다 훨씬 야구를 잘했던 친구가 벤치에서 후보 선수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그 전도유망했던 야구천재 친구도 그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하물며 저는 어땠겠어요?”

과연, 긍정의 신(神)다운 마음가짐이다. 요즘은 야구 대신 짬이 나는 대로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라는 게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있어야 하는 운동이잖아요. 상대방과 신체적 접촉은 일어나지 않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땀 흘린다는 사실에 묘한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 운동을 할 때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되새기곤 합니다. 지나친 승부욕이야말로 부상과 직결되는 가장 큰 함정이니까요. 인생과 마찬가지로 테니스에도 등락이 있는 법이지요. 때로 경기가 안 풀릴 수도 있고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인생이 이렇게 간단명료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문과보다는 잘 맞는 것 같아 이과를 택했고, 공대보다는 좀 더 마음에 들어 의대를 선택했다. 내과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외과를 택했고, 그 어느 과보다도 보람이 클 것 같아 정형외과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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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부러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응급환자가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찾아왔다가, 치료를 잘 받고 멀쩡하게 걸어나갈 때가 뭐니뭐니해도 제일 일할 맛 나지요.”

 

 

 

제주도가 고향인 한 환자는 퇴원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투철한 ‘팬심’으로 동네사람을 한 명 데리고 왔다. 가스폭발 사고를 당한 중상환자였는데, 지역병원에서 1차 치료를 마친 상태였다.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보정조차 힘들 정도였고, 다리 절단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단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찾아왔을지를 잘 알기에 박기철 교수는 “한번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말로 희망을 안겨주며 치료에 돌입했다.

두 차례의 이식수술을 거쳐 뼈가 잘 붙었고 3개월 간의 입원 끝에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퇴원할 수 있었다. 앞길 창창한 30대 초반의 남자는 그렇게 박기철 교수를 ‘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image치유의 기술

골절 손상부위의 위·아래 피부만 최소한으로 절개한 뒤 금속판을 넣어 뼈를 고정하는 최소침습적 금속판 고정술의 경우, 직접 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엑스레이를 보면서 수술하기 때문에 의사의 숙련도가 수술의 성패를 좌우한다.

“단순골절과 달리 복합골절은 의사의 경험에 따라 결과도 천지차이거든요. 치료가 잘못돼 재활 기간이 길어지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요.”

 

박기철 교수가 전공의들에게 초기치료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까닭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일이기에, 고된 만큼 자부심을 느낀단다.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을 고민하고 바지런히 실천에 옮기는 박기철 교수는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그의 의술을 믿어도 된다. 한양대학교구리병원에서만 지금껏 5천 건이 넘는 수술을 집도하다 보니,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본의 아니게 연예인급 인지도를 자랑한다. 수술환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무려 2만여 명의 주민이 길을 걷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안부를 묻는 까닭이다.

외상클리닉(사지·골반 골절), 사지변형교정술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박기철 교수는 지난해부터 대한골절학회 총무도 맡고 있다. 아직 외상 분야는 대한민국 의료 발전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그는 외상 분야 의술이 한 단계 더 발돋움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는 것은 천성이지만,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습관은 부단한 노력 끝에 만들어졌다. 바쁜 일상 틈틈이 어떻게든 인생을 즐길 ‘짬’을 만들어내는 그다.

건강한 심신을 가진 의사로서 당당하게 환자의 건강을 돌보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환자의 쾌유를 도와 일상에 빨리 복귀하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늘 다정다감하고 온화하기로 소문난 박기철 교수이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늘 즐겁고 평화로울 수만은 없을 터.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소통 한 판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또다시 다가올 혹독한 한 주를 여유롭게 준비하며 그는 환자에게, 자녀에게, 지인들에게 더 좋은 동행자가 되어간다는 자신감을 얻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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