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의 어느 밤,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던 아버지의 손을 생각한다. 열이 펄펄 나서 끙끙거리는 그의 곁을 밤새 지키며 물수건을 올려주시던 아버지. 그 커다란 손이 얼굴을 만지기만 해도 열이 내려가는 듯 한 기분이 들면서 벌써 다 나은 것 같았다. 그 손길은 손주현 교수로 하여금 환자의 고통을 마음으로 나누는 일이 의술의 시작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픈 이들을 대하는 모든 순간 그는 아버지의 손길을 떠올릴 터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는 자신의 진심을 한 번쯤 생각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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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이 수상하다?

한양대학교구리병원 본관 2층 소화기내과 외래 진료실. 이른 아침부터 손주현 교수를 찾아와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는 환자들이 눈에 띈다. 맥없이 죽어가던 자신을 살려내고 완치 판명까지 받게 해준 손 교수가“이제 멀리까지 힘들게 오지 마시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정기적으로 검진받으며 관리하시면 됩니다.”라고 배려한 것이 발단이었다.

환부를 꼼꼼히 점검하던 손 교수가 “제 얼굴 자주 보는 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요(웃음)!”라며 힘든 투병 과정을 이겨낸 환자의 손을 꽉 잡는다. 검버섯이 핀 촌로의 투박한 손을 맞잡고 다정다감하게 말하는 손주현 교수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아침 공기처럼 싱그럽다. 일명 ‘속 편하게 만드는’ 의술과 다정다감한 소통으로 폭넓은 팬 층을 양산한 스타 의사다.

손주현 교수가 쓰린 속을 고쳐준 덕에 몇 십 년 만에 밤잠 푹 자고 있다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그 약손으로 무슨 기적을 행한건지 신통방통하게도 고질병이 싹 나았다는 아주머니까지, 그가 일상을 반납하고 환자 돌보기에 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의사는 의술로 세상과 소통한다. 의학 발전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면서도 손 교수의 시선이 환자들의 삶을 주시하는 이유다.

명의(名醫)의 약손

image 철학과 천체물리학에 심취한 소년이었다. 빅뱅 이론과 상대성 원리에 매료돼 안 읽던 책을 달고 지냈단다. 돌이켜 보면 근본적인 관심은 ‘생명’이었던 듯하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명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관해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실 저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온종일 병원과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며 사는 게 늘 안타까웠거든요. 어린 제 눈에는 굉장히 재미없고 불행한 인생 같아 보였는데, 아버지는 항상 행복한 얼굴이었지요. 온 마음을 담아 환자들 곁을 지키셨고요. 병원 이름도 ‘성심’의원이라고 지으셨으니까요(웃음). 누군가의 고귀한 생명을 섬기고 치유하는 삶도 살아볼 만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의사다. 그리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말 아끼기로 유명한 손주현 교수가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의사는 가장 위급한 상태의 사람들을 만나는 부류이니, 환자의 생명과 삶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라는 조언이다. 일분 일초가 모자랄 만큼 숨 가쁘게 돌아가는 병원 안팎에서 그의 사명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image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소화기내과는 실력파 의료진이 첨단기기를 기반으로 전문적인 치료와 시술을 펼치고 있다. 내시경을 이용해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게 되면서 최근 소화기내과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수술 방법, 수술자의 숙련도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학제간 진료와 함께 꾸준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살면서 한 번쯤 배가 아프다는 등의 이유로 병원을 찾지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화기내과 질환은 한국인에게 가장 잘 발병하는 질환입니다. 간부전증으로 죽어가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아주머니가 좀 전에 다녀가셨어요. 아주머니의 형제들도 전부 B형간염 보균자인 데다, 워낙에 나쁜 상황에 찾아 오신 터라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 1년 안에 사망하기 쉬운 케이스였지요. 다행히 우리 의료진을 믿고 수술과 치료 전 과정을 잘 견딘 끝에 합병증 하나 없이 간 기능은 물론 건강과 인생을 되찾으셨습니다.”

알코올성 간경화로 피 토하며 응급실로 실려 온 할아버지도 소위 ‘팬클럽 회원’이 됐다. 술·담배 먼저 끊지 않으면 진료해주지 않겠다고 야단치는 손주현 교수의 극성 덕에 수십 년 만에 금주에 성공해 내친김에 무병장수에도 도전하셨단다.

전국 곳곳에서 자신을 믿고 찾아와 생명을 맡기는 환자들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온 정성을 쏟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하면서 보람을 느껴왔지만, 정작 가슴에 사무치도록 기억에 남는 환자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끝내 운명을 달리한 환자들이다. 의사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고 고통을 안겼던 그 분들은, 역설적이게도 그로 하여금 더욱 뜨거운 숨을 불어 모으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섬기는 마음으로 소통하라!

image숨돌릴 틈 없던 외래진료, 검사와 시술 등을 마치고 잠깐의 짬이 났다. 잰걸음으로 연구실에 들러 학회지 교정을 보는 손주현 교수의 표정이 마냥 들떠 보인다.

이왕이면 활용도 높은 자료를 만들자는 욕심에, 바쁜 일정 틈틈이 짬을 내어 학회지 포맷을 확 바꿨단다. 학술지 홈페이지도 만든다. 올해 안에 작업을 마무리해 지구촌 곳곳의 의료진이 우리의 연구 결과를 유용하게 인용하길 바란다.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고 중의(中醫)는 인간을 고치며 대의(大醫)는 사회를 고친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과대학 교수이기에 임상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것 이외에도 의학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에 힘이 실렸다. 간 질환, 바이러스간염, 간경변증, 간암 분야 권위자인 손주현 교수는 대한내과학회, 대한소화기학회에 몸담고 꼭 필요한 의술을 더 많은 곳에 전파하는 일에 힘을 싣고 있다.

대한간학회 홍보·섭외위원장, 대한간암연구회 정보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2008년 아시아태평양간학회 홍보위원장을 맡아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기도 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밀착형 파트너가 되어 질병과 더불어 인간을 고치고 나아가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말하는 손주현 교수가 앞으로 또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넘치는 열정만큼 미숙했던 초창기 시절에도,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로 우뚝 선 지금도, 그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기본을 잊지 않으며 환자들의 소소한 일상과 희망을 의술로 옮긴다. 그것이 손주현 교수가 건네는 ‘약손’의 힘이다.

글. 윤진아·사진. 권용상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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