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심장은 종종 마라토너로 일컬어진다. 일부분만 살아있어도 놀랍게 회복되는 간이 오뚝이, 노폐물을 걸러내는 콩팥이 청소부에 비유되는 것처럼 말이다. 태중에서부터 힘차게 박동하며 생명의 경이를 전하는 심장은 인생의 긴 레이스가 끝나는 순간까지 쉬지 않는다. 심장을 화두로 삼고 있는 신진호 교수는 ‘배고픔과 어리석음을 멈추지 말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신념으로 자신의 레이스를 달리고 있다.

image “난 저 선생 진짜배기라고 생각해. 한결같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 딱 사실만 알려 주는데도 거기에 마음이 실려 있지.”

이제 막 회진을 마치고 병실을 나간 환자에게 다가가 살짝 뒷조사를 하자 70대로 보이는 병상의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한눈에도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을 정도로 깐깐하며 불같이 격정적인 A(Anger)타입 할머니의 눈빛이 형형했다. 의사의 다음 환자인 50대 남성의 평가는 ‘내 병을 잘 설명해주는 의사’ 였다.

image회진을 도는 의사의 행동에서는 조심스러움이 읽힌다. 환자 앞에서 웃음을 띠거나 다정하다기 보다는 다소 진지한 모습이다. 환자들의 얘기에 귀 기울일 때는 흡사 단서를 모으는 형사처럼 언뜻언뜻 심각한 표정도 스친다.

“제 환자들 중에 많은 분들이 완벽주의자에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타입이죠. 문진을 하는 짧은 시간에도 처방약의 개수를 세고 또 세는 분도 계세요. 확실하게 맞춰보시는 거죠. 실수와 빈틈이 용납되지 않는 삶은 긴장과 스트레스가 가득합니다. 그건 달리 보면 삶의 의지에 비례하는 것이고 결국 살려고 하다 보니 고혈압이 되고 심장에도 무리가 가는 것이죠.”

주머니 속에 숨어 있어도 송곳은 언젠가 뚫고 나오는 법, ‘질환 뒤에 숨은 사람’을 생각하는 의사의 마음은 담담한 표정을 뚫고 환자에게 전달되는 듯했다. 심장내과 신진호(42세) 교수는 스스로를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의사라고 소개했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처음 지망한 곳은 혈액종양내과였어요. 흔히 백혈병이라고 불리는 난치성 혈액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여서 마음의 준비를 많이 했지만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었지요. 불가항력적인 것들에 맞설 힘이 강해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심장은 제게 돌파구 같은 분야였어요. 임상에서 도전해볼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최후의 격전장같은 외과가 아닌 내과를 선택했습니다. 내과가 정적인 학문이란 뜻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엔 절대 동의하지 않아요. 다만 예방적, 임상적 치료의 영역이 더 넓다는 것이죠.”

심장은 온몸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매우 중요한 장기로 우리 몸의 순환을 책임지고 있는 ‘생명의 엔진’이다. 심장병은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인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에 이어 3위를 나타냈다. 대표적인 심장병은 협심증,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질환(허혈성 심장질환)이다.

혈관이 막힌 뒤 30분이 지난 시점부터 심장 근육이 괴사하기 때문에 심장병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일단 가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확장해야 하는데 통증이 나타난 지 12시간 이내에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풍선・스텐트 시술은 일촉즉발의 위험상황에 놓인 심장을 위한 즉각적인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인들의 심장질환 시술 수준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신 교수가 심장내과를 본격적으로 전공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에 풍선시술이 막 시작하던 단계였고 발전속도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신 교수는 심장내과의로서 자질을 높일 수 있었다. 혈관확장시술에 빼어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시술에 앞선 예방이다. 그가 혈압치료 등 예방적 치료를 중심에 두고 호흡이 긴 연구와 조사를 펼치고 있는 까닭이다.

“혈압치료 같은 분야를 일컬어 피를 보지 않는 치료라는 뜻에서 비관혈적 치료라고 하는데요. 환자를 다각적으로 살피고 이해하는 의료태도가 중요하지요. 아시다시피 혈압은 한번 재는 것으로 수치를 확정할 수 없어요.

시간, 장소, 마음상태 등에 따라 다양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혈압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혈압수치를 토대로 한 이른바 활동혈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러한 예방적 과학, 임상의학은 스텐트 시술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본질적인 학문인 순수과학에 가까워 다양한 심장치료의 토대가 될 수 있지요.

환자에 대한 장기적이고 입체적인 관찰이 필수인데 그런 조사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이해하는 시선과 생각의 폭이 바뀌지요. 그런 점에서 제가 하는 일은 인문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저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관심이 많죠.”

큰 그릇 의사의 뚝배기 정신

image나무만 살피고 숲을 조망하는 자세를 겸비하지 않는다면 곧, 막혔던 혈관만 뚫고 난 뒤 혈압관리 등 전반적인 건강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혈관은 다시 막히기 십상이다. 숲을 관찰할 때는 토양의 상태, 다른 식물의 분포도, 날씨, 고도 등 고려해야 할 구성 요소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신 교수가 관심을 갖고 연구, 조사하고 있는 예방의학적 심장의학은 섬세하고 다각적인 연구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신 교수가 국민 표본집단 40여 명을 대상으로 5년에 걸쳐 시간적, 종적 관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대한고혈압학회, 대한순환기학회, 한국심초음파학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방헌(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 내과학교실)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부터 조사 데이터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코호트 연구(cohort studies: 특정 인구집단을 연구대상으로 선정, 그 대상으로부터 특정 질병의 발생에 관여하리라 의심되는 특성을 시간적 종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역학적 연구방법) 등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오랜 시간 조사, 관찰, 연구해야 하기에 드라마틱한 시술처럼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습니다. 부단히 스스로를 담금질하면서 매진해야 하는 분야이지요. 많은 후배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불과 몇 분만에 이루어지기도 하는 혈관확장술과 달리 리서치 연구는 수년 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금세 뜨거워지고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열정으로는 시작할 수도 없다. 은근하게 뜨거워지고 그 열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뚝배기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만이 도전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 열정의 중심은 사람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라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심장 vs 마음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자 신 교수는 ‘살리지 못한 모든 환자들’이라고 답변한다. 의사로서 그가 살려낸 생명들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명의에 대한 그의 정의도 일맥상통한다. 곧 ‘환자가 병원에 온 이유를 해소시켜주는 의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보려 한 사람들의 뜨거움을 그는 혈압과 심장에서 발견한다. 다만 그는 그 뜨거움이 과도해 병을 얻은 사람들에게 “괜찮다. 이젠 물같은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다독여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애플컴퓨터의 수장인 스티브 잡스를 좋아했어요. 그가 한 말 중에 ‘배고픔과 어리석음을 멈추지 말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지요.”

쉼없이 박동하며 새로운 피를 만들어내는 심장, 그것은 부단히 움직이며 진정한 의사의 길을 모색하는 의사의 마음을 닮았다.

글.윤진아(자유기고가)·사진.권용상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양대학교의료원 의료진의 ‘喜怒哀樂’, 의사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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