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의사는 곧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김정수 교수는 전공의들에 대한 무한 애정과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비전문가인 취재진을 위해 책을 뒤져 어려운 의학용어를 한글학명으로 받아 적도록 하는 데 시간을 쏟는, 어쩔 수 없는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_김정수 교수

김정수 교수는 술술 넘어가다 허를 찌르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반전소설 같았다. ‘꼼꼼하고 세심한 완벽주의자’ 정도로 간단히 정리하고 돌아서려고 하면 ‘그뿐이게?’하고 슬쩍 돌려 세우는 구석이 그에겐 있었다.

“FM이었죠(웃음). 지각이나 수업을 빼먹는 일도 없었고, 이렇다 할 일탈도 해 본적 없는걸 보면 좀 재미없는 학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의대생 시절을 회고하는 그를 보며, 역시 빈틈없는 첫인상 그대로라 생각하려던 찰나, 사실은 의대보다 공대에 가고 싶었다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고등학교 때 방영된 KBS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손창민이 연기한 의사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단다.  그는 “아마 그 시절 많은 학생들이 그 드라마 때문에 의대에 갔을 거예요”라고 자못 진지하게 말해 좌중을 한바탕 웃게 만들었다.

심각한 피부질환도 깨끗하게 고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명성에 ‘피부과가 그의 천직’이라 결론 지으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부과를 선택한 이유에도 어떤 반전이 숨어있는가 물었더니 “체력적으로 힘든 외과 쪽은 피하고 싶었다”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호랑이 선생님’

“피부과 질환은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환자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심각합니다. 특히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 감염성 질환이나 심각한 염증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찾아오는데, 이 환자들은 대부분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어요.

피부 때문에 외모에 자신을 잃어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그러다 보면 직장생활이나 결혼 등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부지기수죠. 이런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피부미인으로 거듭나 자신감을 찾게 되면 제 속이 다 깨끗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선생님_김정수 교수_3겉으로 드러나는 질병 이면에 숨은 환자들의 내면까지 헤아리는 김정수 교수를 보며 ‘친절한’ 의사이겠거니 생각한다면 오산. 김 교수는 환자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치료 효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피부과 질환이기에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더 이상 치료해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하루빨리 온전하게 되돌려 보내기 위해 엄격한 의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 오랜 시간 움츠려 든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지지만, ‘모자나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하루라도 당당히 다니고 싶다’는 환자들의 눈물겨운 사연은 치료를 서두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50대 후반의 남자 환자분이 기억에 남네요. 안면백선증으로 곰팡이균에 감염된 환자였는데, 이미 6~7군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어 찾아오신 분이었어요. 이런 환자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의사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한 치료 방향이 맞았는지 정말 빠르게 좋아지셨어요. 경과가 좋아져도 특별한 말씀은 따로 없으셨는데, 나중에 지인들을 많이 소개해주시더군요(웃음).”

김 교수는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피부과 환자를 위해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그는 ‘소아청소년 다발성 사마귀의 면역치료효과’에 관한 논문을 국제학술지(SCI)에 등재하기도 했다. 저명한 학술지에 본인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일이 신날 법도 하건만, 어쩐지 그는 자신이 인정받는 것 보다 후학을 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였다.

좋은 의사를 키워내는 엄격한 스승

안녕하세요 선생님_김정수 교수_2의대 재학시절, 김정수 교수는 새벽 4시부터 과외를 다닐 정도로 지독하게 살았다고 했다. 공부 양만도 엄청난 의대생활과 과외를 병행했다는 말에 행여 가정형편이 어려웠는가 물었더니 “나름 8학군 출신”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어쩌면 학비 정도는 부모님께 받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의대생활 6년 동안 제 힘으로 해결을 했어요. ‘나도 이제 성인이니 내손으로 공부해야지’ 했던 거죠. 그렇게 제가 과외로 가르친 학생만 모두 11명이에요, 그 중 7명은 의대에 보냈고,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후배도 있어요. 아무래도 저는 가르치는 데에 남다른 노하우를 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성인으로서의 몫을 다한다는 책임감 한 켠에는 입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보람도 있었다. 이쯤 되니 의사가 아니라 족집게 과외나 입시강사로 나섰어도 이름을 떨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어물쩍 떠올랐으나, “학교에 남아 교육자로 살고자 했다”는 말에 순간 머쓱해졌다.

“전문의 과정을 마쳤을 무렵 마침 개원 바람이 불었어요. ‘대학 교수’와 ‘개원의’를 두고 저도 한참 고민했죠. 그때 학교에 남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환자를 고치는 일 만큼이나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때 개원을 했다면 지금은 병원 서너 개는 너끈히 운영할 정도로 부자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요(웃음).”

제자를 키워 훌륭한 의사로 만드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보람으로 삼은 그이기에 김정수 교수는 학생들에 대해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그는 전공의들에게 예의와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환자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호랑이 선생님’을 택했듯, 학생들이 더 좋은 의사가 되는 데에 디딤돌이 돼주기 위해 ‘엄격한 스승’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의과대학을 마치 학원처럼 여기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의 가르침도 등록금을 냈으니 당연히 누려야 할 반대급부 정도로 생각한달까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스승을 존경하고 따라야 좋은 가르침을, 특히 의술뿐 아니라 인간됨을 배울 수 있는 것인데….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것이 의사의 일입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천천히 꾸준히 하면 승리한다; 서두르면 일을 거스른다는 뜻).’ 인터뷰 말미에 문득 생각나 물은 김정수 교수의 좌우명이다. 그가 올라선 트랙에서 그는 여전히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달리는 중이다.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의사이자, 제자들을 좋은 의사로 길러내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그래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글. 편집실 사진.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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