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진지한 모습에 ‘역시 의사선생님이시구나’하려니 다음 순간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도 환자들과 대화 나누는 일에 더 몰두하는 이창화 교수. 그 순간을 그대로 담으려니 “신장내과 홍보가 잘 되어야 한다”며 열심히 포즈를 취한다. 그런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자연스레 머릿속을 채운 단어는 ‘인간적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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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움직이는 ‘관계의 힘’

“멋지게 말하자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솔직한 게 좋겠어요. 원래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재수시절, 주변에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괜찮아 보이더군요. 힘들지만 보람도 있을 것 같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어릴 적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거나 사명감 때문이라고 답했다면 오히려 싱거웠을 텐데, 의외의 대답에 저절로 질문이 이어졌다. 어렵기로 소문난 의대 공부를 특별한 각오 없이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처음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을 조금쯤은 누릴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어요. 그저 옆에 있는 친구들도 묵묵히 그 과정을 이겨내고 있으니까 저도 못 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천재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에 흥미를 느끼고 난관을 극복하려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이창화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동료들과 부대끼며 나누는 과정의 소중함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의대생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해부학 교실’을 거치며 비로소 의사로 거듭났다는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관계의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늘 혼자 도드라져 보이기 보다는 기본과 관계에 충실한 학생이었던 탓일까. 전공 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그는 성향을 그대로 이어갔다.

“의학 공부를 하면서 내과에 강하게 끌렸습니다. 다만 요즘은 내과도 해부학과 수술에 기반한 과가 많아지고 있으니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내과 고유의 색깔을 가진 내분비대사내과와 신장내과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신장내과를 선택했어요. 내분비대사내과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한결같음’

한양대_0129_072내분비대사내과가 어려울 것 같아서 신장내과를 택했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던져 두고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는 그와 마주하고 있으려니 이창화 교수에게라면 의사에게 환자란 어떤 의미인지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환자의 기대와 자신의 ‘일’ 사이의 간극을 그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던 것이다.

“신장내과의 특성상 한 환자와 인연을 맺으면 오래 두고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1년에 4차례 남짓 혈액투석을 하시는 환자분의 경우, 10년이면 적어도 40번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환자분의 세세한 어려움을 듣게 되니 그저 ‘일’로 만나는 사람일 수가 없죠. 인간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커지거든요.”

결국 다시 ‘관계’의 문제로 돌아온 셈. 그를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이 식습관부터 생활습관까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이다 보니, 일을 잘 하고 싶다는 관점에서 봐도 사무적으로만은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창화 교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서운 선생님’은 될 수 없다 말한다.

“친절한 편이라고는 감히 말 못하겠지만, 저는 환자분께 주로 부탁을 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어요?’라며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을 해드리면 스스로 납득을 하시게 되니 장기적으로는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런 그에게도 가슴 아픈 순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와 대화를 나누다 망연해진 기억이 있다. 당뇨부터 신장질환까지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그에게 “선생님, 제 혈관이 점점 막혀가면서 저는 죽어가겠죠?”라는 말을 건넸던 것. 오랜 시간 만나 왔던 환자가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이창화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라며 눈을 피했다. 다음 순간에야 그를 다독이며 호전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설명했지만, 그런 날이면 이창화 교수는 의사로서의 사명과 책임의 무게를 새삼 깨닫는다. 반면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가 기분 좋게 퇴원하는 환자를 대하는 날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신장내과의 특성상 한 환자와 인연을 맺으면 오래 두고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1년에 4차례 남짓 혈액투석을 하시는 환자분의 경우, 10년이면 적어도 40번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환자분의 세세한 어려움을 듣게 되니 그저 ‘일’로 만나는 사람일 수가 없죠. 인간적으로 공유하는 부분도 커지거든요.”

자부심과 안타까움 사이, 인간적인 의사

한양대_0129_076의학에 발을 들이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이창화 교수를 끌어온 또 다른 한 축은 한양대학교병원 신장내과와 인공신장실에 대한 자부심이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한양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은 우리나라 인공신장실의 산 증인이기 때문.

“지금은 학교를 떠나셨지만 제 평생의 스승이신 박찬현 교수님부터 현재 이곳에 있는 동료와 선후배들까지, 우리 병원 신장내과에는 좋은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은 물론 무료 투석실이 많아지면서 과거의 명성은 퇴색된 것이 사실이죠. 이 부분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환자분들의 건강을 생각해도 참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무료 투석실을 찾았다가 건강이 나빠져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볼 때면 이창화 교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배 이상의 치료비와 시간을 들이고서도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무료 투석실을 찾았다가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오는 환자가 허다한 것.

한양대_0129_111“무료 투석실이 많아지면서 전국적으로는 신장내과를 선택하는 의사의 수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장내과 의사로서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었고, 좀 더 솔직히 말해 전망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죠. 똑똑한 친구들이 신장내과를 택했다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한양대학교병원 인공신장실 실장으로서 20여 년 가까이 이뤄낸 성취를 뒤로 하고, 앞으로 자신이 만들어나가야 할 길에 대해 더 크게 고민하는 이창화 교수. 그를 만나고서야 평범한 우리가 바라는 ‘의사선생님’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가 아니라 환자들의 일상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해법을 찾아가는 ‘인간적인’ 의사선생님임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글. 최명숙 / 사진.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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