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

행복하고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한 ‘준비된 의사’ –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

 전도유망한 성악가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인생역전

평생 품었던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의 심정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유가 원인이라면, 더욱 미련이 남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바뀌지 않은 꿈이기도 했고, 저 스스로도 노래하는 것이 무척 행복해서 당연히 성악가가 되어야지 마음먹게 되었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정식으로 성악수업을 받다가 습관성 하악 탈구가 생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얼마나 좌절했던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속상하고 슬퍼했던 기억이 납니다.

2, 3옥타브가 오가려면 공명을 위해 입을 크게 벌려야 하는데 턱이 자꾸 빠져버리는 현상은 성악가에게 치명적이다. 수술을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김희진 교수.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그런지 동료 교수들이 농담처럼 부르는 ‘비운의 성악가’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20대를 돌이켜보면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성악 이외에 다른 길은 생각도 못해 본 터라 포기하기까지 방황의 시간이 있었고, 겨우 마음을 추슬러 대학 입시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은 다 경험해본 기분이었어요.

이듬해 한양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하면서 내내 순수과학과 의학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김희진 교수. 당시의 쓰라린 인생 경험이 신경과 전문의로서 사명감을 심어준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는 어려운 인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책임지며 선택한 길이었기에 전도유망한 성악가에서 지금처럼 환자의 마음을 아우르는 신경과 전문의로 변신한 모습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그녀다.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선택한 신경과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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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시도 있듯이 필경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고민거리는 아무래도 진로 결정이 아닐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의대에 진학하면서 막연히 어렵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지만, 어떻게 그들을 도울지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김희진 교수는 또 다시 잠깐의 방황을 해야만 했다.

“환자의 인지 기능과 의식 상태를 다루는 신경과는 상당히 어려운 학문이고, 무엇보다 전공의 수준에서 다른 과 교수님들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과이기도 합니다. 다른 과에 비해 발견된 것이 많지 않고, 현재 2% 정도만 알려져 있어 앞으로 연구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었죠.”

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도전하기까지 김희진 교수는 참 많은 길을 돌아왔지만 그때 갈등하고 고민해 온 것들이 환자를 대하는 데 있어 다양한 경험으로 작용해 굉장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에게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환자가 아파도 얼마나 아픈지, 힘들어도 얼마나 힘든지 100%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느꼈던 다양한 경험들이 없었으면 삶의 고통이나 아픔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 거예요.”

아픈 경험을 해본 이들은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상대를 품을 줄 안다. 현재 한양대학교병원과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와 퇴행성질환, 뇌혈관질환을 전문진료 분야로 하는 김희진 교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병동의 어르신들을 부를 때도 ‘어머니, 아버지’라 다정스럽게 부르고 살갑게 대한다.

내리사랑이라고들 하잖아요,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녀들은 부모를 그렇게 사랑하지 못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외로운 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그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길동무가 되어 드리는 이 일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입니다.

아직 시작하는 입장이어서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김희진 교수는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복지나 주변 환경, 웰빙 등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복한 100세 시대를 위한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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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50만 명을 넘어섰고, 보건복지부가 추정하는 환자 수보다 훨씬 더 빨리 늘어나 2036년이 되면 300만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는 뚜렷한 치료약이 없어 증상을 완화시킬 뿐, 이미 뇌세포는 없어져버려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젊음의 묘약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다. 그래서 김희진 교수는 ‘케어’의 개념보다 ‘큐러블(CURABLE)’, 즉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세포 치료는 물론 좋은 신약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가운데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고 치료하고자 노력한다.

모든 질환이 다 그러할 테지만, 특히 치매는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고통 받는 경우가 많아 지켜보는 입장에서 매 순간이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상황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조발성 치매로 찾아오신 55세 여자환자 분이 계신데, 센터로 오셨을 때는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성격장애가 이혼 사유였는데, 그것이 치매 증상이었던 사실을 부부가 몰랐던 거죠. 지금은 남편을 전혀 못 알아볼 정도로 위중해지셔서 남편 분이 매일 병동을 찾아와 우시는 모습을 보면 저희도 가슴이 아파요.”

치매 환자는 케어가 중요해서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 24시간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멀쩡했던 보호자도 치매에 걸리기가 쉬워 부부 모두가 치매에 걸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는 김희진 교수. 간병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함께 고민하며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치매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60대 이후지만 치매를 일으킬 수 있는 병리가 시작되는 것은 30, 40대부터 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인지능력이 정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면 차라리 30, 40대부터 건강관리에 힘써 나쁜 외부 충격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것이 추후 발생하게 될 노년기 질환을 막는 최선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사는 병이 생기면 과감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김희진 교수. 그는 비록 우리 세대에서는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노화를 정복할 수 있어 사는 동안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세상이 열리길 소망하고 있다.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실수도 실패도 영광도 결국 끝까지 좋은 것도 없고 또 끝까지 나쁜 것도 없어요. 당장 어렵고 힘들더라도 조금 기다려보면 틀림없이 길이 보일 것입니다. 너무 힘들 때에는 손을 내밀어보는 것도 괜찮아요. 초조해하지 마세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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