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구리병원 의료봉사단은 그동안 이름도 없이, 소리도 없이 활동해 왔다.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의료진들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그동안 무료 개안수술을 해준 소외 지역 사람들의 숫자는 긴 세월만큼 상당하다.

이렇듯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의료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늘 노력하는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직원들의 봉사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로까지 시선을 돌려 더 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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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네 살 할아버지는 세 시간에 걸친 긴 수술 시간 동안 미동 한 번 하지 않으셨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오랫동안 삶을 이어 왔으니 세 시간의 수술을 견디는 일쯤이야 대수겠는가, 그리 생각하셨으리라. 수술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세상을 보게 해 준 이들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고마워.” 그러나 정작 고마운 것은 의료봉사단이었다.

어디 이 뿐이던가. 자식들이 나 몰라라 하는 실명 위기의 독거노인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주신 감자, 고구마, 옥수수, 부침개, 떡을 간식으로 먹으며 또 얼마나 가슴 뭉클했던가. 그러니 이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는 것이다.

한 개의 종합병원이 움직이다

“1987년 왕십리에 있는 한양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할 때 경남 함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어요. 당시 안과 과장이셨던 최준규 선생님이 의료단장을 맡았고, 현재 타 병원에 계신 이진학 선생님, 그리고 여덟 명의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이 뜻을 함께 했지요.”

의료봉사단의 시작과 함께 해온 하루미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수간호사(수술실)는 매년 8월이 되면 장비를 준비하고, 의료진을 구성하느라 분주한 여름을 보낸다.

의료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주로 넓은 학교 체육관이에요. 칸막이로 임시 수술실을 만들고 현지 라이온스클럽, 군청, 보건소 등에서 셔틀버스로 교통 불편한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셔오지요. 대부분 보건소까지 나오는 데 한 두 시간이 걸리는 곳에 사시거든요. 버스도 드문드문 다니고 몸까지 불편하니 나올 엄두를 못 내신 거죠. 2박 3일 일정 동안 보는 환자들의 수는 8백여 명에서 1천여 명, 수술환자는 평균 40~50명이에요.”

처음엔 다들 뭣 모르고 의료봉사를 갔었다. 그런데 한 번 다녀온 후 계속해서 이어가자 다짐한 것은 가슴에 온기가 깃들어서였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매년 8월 15일을 전후로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이비인후과 이승환 교수와 의료진들(사진 왼쪽)의 의료봉사는 전국의 오지와 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경북 청송을 비롯해 재차 방문한 지역도 여러 곳이다.

“저기 놓여 있는 감사패가 바로 청송군에서 주신 것이에요. 그 외 지역에서도 의료봉사가 끝나면 감사패로 고마움을 표해 주셨어요.”
의료봉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감사패는 그동안의 기록이고 보람이다. 한 개의 종합병원이 움직인다고 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준비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의료진들이 의료봉사활동을 자처하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다.

해외로 이어지는 의료봉사

“올해부터는 해외로도 눈을 돌리고 있어요. 1994년 이미 중국 연길에 다녀왔고, 올해 2월 28일부터 3월 7일까지 안과의료봉사단체인 비전케어와 8일간 네팔을 다녀왔어요.”
현지에 코리아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지만 먹는 것, 자는 것 등 모든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물이 귀해 더 했다. 그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2박 3일 내리 수술이 이어졌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치료했다. 빠듯한 경비를 줄이기 위해 왕복 7~8시간이면 되는 비행시간은 홍콩을 경유하는 바람에 12시간으로 늘어 모두 지칠 대로 지쳤었다. 몸은 그러했으나 마음은 따뜻했다.
“내년엔 우리나라 백령도나 울릉도 두 곳 중 한 곳으로 의료봉사를 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아직 계획에는 없지만 해외도 다녀올 예정이에요.”
아직 이름도 없고, 참여하는 의료진 역시 그해 상황에 따라 지원이 구성되지만 매년 체계적으로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봉사가 주는 기쁨 때문이었다. 그 기쁨을 알기에 돌아와 개인적으로도 의료봉사를 하는 의료진도 많다.
“앞으로는 해외 의료봉사에 주력하려고 해요. 지난 14년 동안 의료 혜택이 미치지 않는 우리나라 지역은 거의 다녔으니까요.”연계만 잘 이루어진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의료봉사를 하고 싶은 것이 의료봉사단들의 생각이다. 남들이 바다로 산으로 강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때, 그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의료봉사를 떠났던 그리고 또다시 떠날 마음을 가진 의료봉사단의 이름 없는 역사는 이렇듯 소리 없이 아름답게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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