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승리로 평생의 한판을 얻은 사나이

절반의 승리로 평생의 한판을 얻은 사나이무더위가 최고치에 달한 올 여름, 눈물겹게 자랑스러웠던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은 제30회 런던 올림픽에서 경이로운 결과를 쌓으며 우리를 웃고 또 울렸다.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한다면, 승패를 떠나 어떤 경기가 조금 나았고 더 못했다고 감히 평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역시 드라마틱한 격정으로 여운이 남는 것은 유도 경기였다. 안타까운 심판 판정을 뒤집고 고귀한 동메달을 탈환한 조준호 선수, 한판의 황제로 등극하며 4년 전 패배를 설욕한 김재범 선수, 그리고 무릎 부상과 척추분리증이라는 유도선수에게 치명적인 질환과 싸우며 금메달과 함께 은퇴한 송대남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외로운 투쟁으로 얻은 눈물의 월계관

“유도의 송대남 선수는 주특기인 업어치기로 쟁쟁한 상대들을 제압하고, 금빛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올해 33살, 유도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이고, 무릎수술로 재기가 불투명했지만 불굴의 투혼으로 세계를 제패했습니다.”라는 앵커 멘트가경기의 처음부터 단상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건 뜨거운 순간까지, 모든 장면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아쉬울 수도, 값질 수도 있는 은퇴를 앞둔 마지막 런던 올림픽. 33살의 노장 송 선수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광속의 업어치기로 예상을 뒤엎고 위대한 마지막을 향해 장엄하게 올라섰다. 결승전의 상대는 국제대회에서 선전을 거듭하고 있던 쿠바의 곤잘레스 에슬리 선수였다. 송 선수는 역시나 자신의 최고 장기인 업어치기를 시도하며 공격에 나섰지만, 경기는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동서지간이자 큰 형님같이 의지했던 유도 국가대표 정훈 감독마저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작전을 지시하던 도중 경기장에서 퇴장을 당했다. 송대남 선수는 결국, 너른 유도판 위에 홀로 남아 외로운 싸움을 끌어갈 수밖에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간 결승전, 스포츠는 반전의 반전이라고 했던가. 연장 10초 만에 벼락같은 안뒤축걸기로 송 선수는 곤잘레스를 압도할 수 있었다. 금메달을 결정짓는 절반! 말 그대로 골든 스코어라는 경이로운 결과였다. 송대남 선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올림픽 무대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오랜 꿈인 금메달을 하늘 높이 거머쥐며, 환희와 회한이 섞인 눈물로 마침내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칠전팔기가 만들어낸 백전백승 그리고 더 큰 꿈…

치명적인 척추분리증과 사투를 벌인 골든 히어로, 송대남 선수런던 올림픽 유도 경기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히어로’로 떠오른 송대남 선수는 사실, 유도선수 초년병 때부터 화려한 전적을 떨치던 에이스였다. 학창 시절 내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완벽한 파괴력과 능수능란한 기술을 자랑했다. 경기에서 ‘패배’란 단어를 허용하지 않으며 후퇴할 줄 모르던 송 선수는 그야말로 유도 국가대표 재목감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유도 천재의 삶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불행히도 척추분리증에 걸려 1년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던 것. 운동선수에게 1년을 쉰다는 것은 재기 불능이나 마찬가지였고, 스카우트 제의는 자연스레 사라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 또한 갈 수 없게 되어 당시로선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재활치료와 훈련으로 다시 한 번 비상하게 될 내일을 준비하던 송 선수는 청주대 졸업 후, 상무를 거치면서 뛰어난 기량을 뽐내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가족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 그리고 스스로를 이겨낸 불굴의 투지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 게임, 올림픽 게임과 같은 빅 경기에서 매번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8년 5월 8일, 베이징올림픽 81kg급 최종 선발전이 열린 날이었다. 송대남 선수는 39점으로 김재범 선수를 2점차로 앞서며, 올림픽 출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최종 선발전 결승에서도 김 선수를 뜨겁게 맞이해야 했다. 5분의 경기와 3분의 연장전을 치르고도 승부를 내지 못한 끝에 내려진 판정. 송 선수는 김 선수에게 0:3으로 패하며 또 한 번 주저앉아야 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코치, 지인들 모두 이것이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리라 여겨 송 선수의 은퇴를 예측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하지만 이후 2011년 3월, 그는 체급을 올려 다시 한 번 올림픽에 도전했다. 그것이 이번 런던 올림픽이었다. 점심으로만 스테이크 13장을 먹고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먹었다. 살이 아니라 힘을 쓰는 근육을 키워야 했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양이 뒤따랐다.

마침내 2012년 8월, 금메달과 함께 ‘비운의 유도선수’라는 질긴 꼬리표를 보란 듯 떼어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얻은 진정한 1등이었다. 송 선수는 이제 막 서른 잔치를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를 더 이상 선수로는 볼 수 없지만, 국가대표팀 유도 코치로 만날 수 있다. 송 선수 아니 송 코치로부터 제2의, 제3의 송대남 선수가 나오길 고대하며 다시 한 번 심장이 터지도록 기립박수를 보낸다.

장하다, 송대남! 아름답다, 그 이름!

글. 전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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